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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겨레의 꽃 무궁화축제를 시작하면서,


1997년 4월 5일 식목일에, 한민족100년계획천진암대성당건립위원회의 강영훈 위원장을 비롯한 내빈과 신도들은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내 와 성지 입구의 3천여 평의 부지에 무궁화 동산을 조성하고 1만여주 무궁화를 식목하였다.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은 일본이 조선을 점령할 당시 독립운동가들에 의하여 불려지던,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름으로써 그 전에는 근화(槿花), 무게 나무 등으로 불리었다. 한반도에 살던 우리 조상들(東夷族)이 무궁화를 가꾸고 있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8세기 전후의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산해경 山海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동진(東晉)때 곽박이라는 사람이 그때까지 전해내려오는 기록을 종합 정리한 것으로, "군자(君子)의 나라에 훈화초(薰華草)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고 하였다.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 또한 신라 효공왕이 문장가인 최치원에게 작성시켜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 가운데 '근화향(根花鄕 : 무궁화의 고향나라)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하고 기록하고 있어, 신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고 있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이 저술한 한국 최고의 화목에 관한 책인 <양화소록 養花小錄>에는 "우리 나라에는 단군이 개국할 때부터 이미 무궁화를 가꾸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무궁화의 나라(槿域)'라 말하였다"는 기록도 있듯이, 무궁화는 우리겨레와 3,4천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일제의 <왜기 倭記>에는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인 꽃으로서… 고려시대에는 전 국민으로부터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상·의학상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 일본의 벚꽃,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왕실화가 이화(李花)로 정해져서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던 것인데, 20세기의 문명이 조선에 들어옴에 유지들은 민족 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 진작에 노력하여 붓과 말로 천자만홍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로되 무궁화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3개월을 계속해서 핀다고 하여, 그 고결함과 위인적 자용(偉人的 姿容)을 찬미하였다. 따라서 무궁화 강산 운운은 자존된 조선의 별칭인데 …"라는 기록과 같이, 우리 민족과 무궁화의 관계는 천륜적이라 하겠다. 또한 "조선에도 개화풍이 불어오게 되고 서양인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당시의 선각자 윤치호 등의 발의로 양악대를 비롯하여 애국가를 창작할 때에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요, 겨레의 꽃이 되었다. 안창호 등이 맹렬히 민족정신을 고취할 때에 연단에 설 때마다, 가두에서 부르짖을 때마다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무궁화 동산을 절규함에, 여기에 자극을 받은 민중은 귀에 젖고 입에 익어서 무궁화를 인식하고 사랑하게 되었다"(1935. 10. 21. 동아일보)라는 당시의 보도는 실로 중요한 기록이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제 8권 p.145-146 참조>.

결국 무궁화는 단순히 나라의 꽃이라기 보다는 "겨레의 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천진암 성지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무궁화를 심기 시작하였었다. 1979년에 수백주를 심었고, 1980년과 1981년에도 2000여주를 심었으며, 1982년도에는 3000여주, 그리고 최근에는 10,000여주를 심었고, 한민족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 주변의 토목공사가 끝나면 모두 300,000여만주의 무궁화를 심을 예정이다.

이제 무궁화에 대한 사랑은 사실 한국 천주교 성직자들의 문학 작품과 신자들의 성가 속에 이미 표현되고 있다. 이미 반세기 전에 고 최민순 신부님께서 지으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노래를 보면 "서라벌 옛터전에 연꽃이 이울어라. 선비네 흰옷자락 어둠에 짙어갈 제 한 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시여"라고 하므로써, 김대건 신부님을 한 떨기 무궁화에 비유하고 있다. 또한 지난 1984년 로마 교황성하께서 한국에 오시어 거행하신 103위 시성 당시 시성추진부에서 영문판으로 발행하였던 103위 성인전의 표지에도 우리나라의 꽃인 무궁화를 전면 총천연색으로 넣음으로써, 신앙 속에서의 무궁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였다. 이렇게 겨레의 꽃인 무궁화에 대한 사랑은 신자들의 성가 속에서, 103위 성인전 속에서, 그리고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에서, 성장하는 무궁화 동산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더욱이 올해부터 조용히 조그마하게 개최되는 어린이들 중심의 무궁화 축제를 시작으로 100년 계획으로 계속될 것이다. 매년 우리나라의 곳곳에서는 벚꽃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벚꽃 자체가 나쁠 것이야 없겠지만, 일본의 국화 축제는 앞을 다투어 열면서도, 나라꽃이며 겨레의 꽃인 무궁화축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소원하였음을 우리는 부끄러워하면서, 올해부터 우리는 촌스럽고 쑥스럽다고 흉잡히더라도 무궁화 축제를 벌이기로 하였다. 무궁화 축제는 오락과 소비와 향락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철학이 있는 축제이고, 민족 정신을 소생시키는 숨쉬는 역사의 축제이며, 역사정신을 되살리는 축제가 될 것이다. 무궁화에 대한 노래와 시가 너무나 빈약한 지금 새로 짓는 무궁화 시로 작곡도 시도 할 것이고, 앞으로는 무궁화 장학금도 주면서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할 것이다.

<무궁화 축제의 축사를 한 장극 박사 소개>

시편을 비롯한 성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민족정신이 신앙과 얼마나 잘 융합되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앙심과 애국심, 민족애는 결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구분될 뿐이다. 애국심은 신앙심으로 승화되고, 신앙심은 이웃사랑이라는 면에서 애국심으로, 민족애로 발전 강화하는 것이다. 천진암 성지는, 사람들이 무궁화가 심겨진 진입로를 따라 성역으로 오르게 되며, 애국심을 키우고, 그 키워진 애국심은 성지에 서려 있는 선조들의 신앙과 순교의 정신을 힘입어 더욱 강한 실천신앙으로 결실되고, 그 신앙심은 다시 성지 주변의 무궁화들을 통하여 애국심과 민족정신으로 꽃피우게 될 것이다. 이제 천진암 성지는 애국심과 신앙심을 하나로 묶어서 자손만대에 전승하는 그런 성지로 성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 천주교회는 애국심과 신앙심을 하나로 합하여 거룩한 새 민족문화를 이루도록 해야 하며, 따라서 민족정신과 천주교신앙이 상호보완적인 성장과 결실로 무궁히 발전케 해야 하겠다. 천주교회를 민족 정신의 토양 위에서 키우고, 우리의 민족문화는 전 세계적인 천주교 신앙을 받아 하나가 되어, 온 겨레가 천주와 더욱 밀접히 결합하는 새 역사가 이 천진암 성지에서 더욱더 튼튼히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1999. 8. 29.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지 주임 변기영 신부>



총재 이용훈 주교/담당 변기영 몬시뇰 / 위원장 강영훈 / 수석부위원장 안강민 / 부위원장 김성훈, 염보현 / 사무총장 남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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